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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이야기

한지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유족 편지 낭독하다 울컥

by 라이크슈 2019.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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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인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입니다.

 

28년 전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날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서울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는 2회째를 맞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이 열렸는데요.

위안부 피해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유족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배우 한지민 씨가 대독 했습니다.

 

한지민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19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 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에도

노개런티로 내레이션에 참여할 정도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며 응원하는 소신 있는 배우인데요.

 

 

 

한지민 인스타그램

 

 

 

지난 8일 자신의 sns에도 영화 '김복동'의 개봉을 홍보하며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

 

 

 

이런 한지민 씨가 진심이 담긴 차분한 목소리로 위안부 피해자 유족의 편지를 대독 하다가

결국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직도 해결안 된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인 만큼,

일본에게 진심 어린 사죄와 보상을 받고 가슴에 진 응어리가 치유될 수 있을 때까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그녀가 낭독한 편지 전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위안부였던, 사랑하는 엄마에게

 

어린 시절, 또래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평양이 고향이신데

전쟁 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우리 엄마는 참 훌륭한 분이라고 자랑을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엄마가 일본군 위안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뭔지 무슨 일을 겪으신 건지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1942년.

엄마 나이 열일곱, 전쟁 때 다친 사람들을 간호하러 가신 게 아니구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신 거구나.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엄마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 얘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며 제게도 항상 신신당부하시곤 했었죠.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저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써 외면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모른 체하고 싶었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 깊은 슬픔과 고통을 안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엄마. 엄마가 처음으로 수요 집회에 나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어디 가시는지조차 몰랐던 제가 그 뒤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이 세상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해.

다시는 나 같은 아픔이 없어야 해.

 

엄마는 강한 분이셨어요.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진정한 사죄도, 어린 시절도 보상받지 못하시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과의 싸움이었을 엄마를 생각하며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 끝내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를 품고 가신 우리 엄마.

모진 시간 잘 버티셨습니다.

이런 아픔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반드시 엄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제 모든 거 내려놓으시고 편안해지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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